‘아만자 박배우’에게 ‘꿈’을 물어보았다
“OO씨 꿈은 뭐에요?”
2025년 첫 상명피플이다. 학생홍보단 인터뷰 자료를 편집했던 게 어제 같은데, 어느새 캠퍼스에 새로 들어온 이들을 맞이하고, 정든 캠퍼스를 떠난 이들을 응원하며 못 다 끝낸 일을 마무리하고 있다. 신입생들은 지금 어떤 기분일까. 나의 20살 때를 복기해 보면, 3월 첫 캠퍼스 라이프에 매일 신나있었다. ‘대학 가면 애인 생겨!’라며 고3 때 담임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채로 말이지. 그게 거짓말이란걸 알았을 때 나는 졸업반이었다. 장밋빛 같은 청춘? 군대 갔다 오고 취업 준비생이 되니 그런 건 없었다. ‘나는 뭘 하면서 살아야 하지?’란 막막함 때문이었다. 꿈이 없었단 게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새 학년 첫 출발부터 이런 칙칙하고 암울한 이야기라니, 혹시라도 이번 호가 푸릇푸릇하길 기대했던 분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겠다. 그러나 어두운 밤도 빛을 밝히면 별빛이 수놓아 진단 걸 알아주길 바란다.
박선정이라는 배우를 아는가? 대학로 연극 혹은 드라마 단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소위 말하는 ‘무명 배우’이다. 대부분 처음 듣는 이름일지 모른다. 어릴 적부터 꿈꿔온 배우라는 직업에 큰 애착을 가진 그녀는 더 넓은 세상을 위해 본교 문화기술대학원 공연예술경영학과 석사 및 글로벌문화콘텐츠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열정을 가지고 본업을 위해 힘써오던 그녀에게, 세상은 참으로 무심하다는 걸 깨닫게 된 일이 생긴다.
암 선고. 일상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암초가 나타났다. 절망도 사치스러운 일 앞에서도 그녀는 멈춰설 수 없었다. 배우라는 직업을 사랑하기 때문에, 본인의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는 건강한 삶을 되찾기 위해 달렸다. 아픔을 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는 그녀의 삶은 지금 새로운 2막을 앞두고 있다. 시련을 이겨내고 여전히 꿈을 살아가는 어느 배우의 이야기, 이번 상명피플의 주인공은 박선정 배우다. 팝콘을 가져와도, 콜라를 가져와도, 그냥 빈손으로 와도 좋다. 이 이야기가 당신에게 울림이 되길 바라며, 올해 마수걸이 상영을 시작하겠다.
그렇게 ‘아만자 박배우’에게 ‘꿈’을 물어보았다.
Q: 안녕하세요. 상명대학교 커뮤니케이션팀입니다. 이번 상명피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시작에 앞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선정 동문(이하 ‘박선정’): 안녕하세요. 저는 연기하는 배우 박선정이라고 합니다. 85년생, 벌써 41살이 되었네요. 상명과의 인연은 공연예술경영학과 석사, 글로벌문화콘텐츠전공 박사 과정을 통해서 이어지게 되었는데요. 오늘 인터뷰까지 하게 되어 무척 반갑습니다.
Q: 잘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여러 촬영 문의 차 연락을 주고 받았었고, 이제는 인터뷰로 직접 뵈니 저도 감회가 굉장히 새롭습니다. 특히 배우로 활동하신 만큼 뭐랄까, 연예인을 실제로 보고 있으니 약간 긴장되네요. 그럼에도 오늘 좋은 인터뷰 만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선정: 네 잘 부탁드립니다.
Q: 그럼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처음 소개해주신 것처럼 ‘연기하는 배우’라고 하셨는데, 많은 분들에게 배우란 직업은 일종의 선망의 대상이라 할까요? 어떤 이들은 배우를 동경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배우를 꿈꾸고 있고, 또 누군가는 배우는 어떻게 되는걸까란 생각을 가지고 있을텐데요, 동문님은 어떻게 배우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
박선정: 어릴 때부터 TV에 나오는게 제 꿈이었어요. 유치원 다닐 때도 친구들한테 “내가 ’TV는 사랑을 싣고‘에 나와서 찾아줄게!”라 외치고 다닐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재미있는 배우가 되자란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 길로 이끈 것 같아요.
Q: 어떻게 보면 배우란 꿈이 인생의 동반자같은 느낌이네요.
박선정: 맞아요. 특히 고3 때 그런 걸 많이 깨달았어요. 한창 대입 준비하면서 ’난 무슨 과를 가야하지?‘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았었는데, 저는 연극영화과를 갈거라고 계속 다짐했기에 그런 고민이 낯설게 느껴졌어요. 한 가지 꿈이 있는 경우가 많지 않구나, 고민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배웠어요. 물론 저도 배우 생활을 하면서 무명이었던 기간이 정말 길었고, 여러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래도 꿈이 명확했고, 지금도 그 꿈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배우란 직업이 저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요.
Q: 배우의 꿈을 꾸면서, 또 배우의 삶을 살아가면서 정말 많은 감정을 느끼시지 않았을까 싶네요.
박선정: 음 슬픈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도 저는 무명 배우에 가깝다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정말 많은 직업군이 있잖아요. 나를 소개할 때 예를 들어 “저는 의사 OOO입니다.” 혹은 “제 직업은 교사입니다.” 이런 식으로 할 수 있을텐데, 저는 “배우 박선정입니다.” 라고 말하면 어떤 분은 “드라마나 영화, 연극에서 본 적도 없는데 배우에요?”라 말을 하실 정도니까요. 사실 유명 배우와 무명 배우의 생활은 정말 달라요. 우리가 흔히 이름 대면 아는 배우들은 유명 작품에 캐스팅되기도 하고, 광고나 이런 것들도 많이 찍을 기회가 오고 하는데, 저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조금 멀었죠. 대학도 삼수 끝에 들어갔고요. 그 이후에도 대학로에서 연극을 계속 해왔지만 유명세를 얻지 못해서 자존감도 떨어지고, 힘든 시간이 꽤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막이 내릴 때 관객들의 박수를 받을 때 느끼는 감정에 아직도 벅찹니다. 그래서 그 행복함을 가지고 지금까지 배우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배우들은 대사를 숙지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 정년이라고 하는데, 저는 정년 없이 마지막까지 연기를 하고 싶습니다.
Q: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애착이라든가 프라이드가 정말 남다르다는 게 느껴지네요. 아무리 무명 배우라 할지라도 내가 내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하셨던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좀 드는데요. 좀 더 나아가서 이 열정이 배우라는 직업, 여기서 좀 더 나아가면 문화에 대한 거에 대한 열정으로 발전되어서 학업을 더 이어나가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석박사를 진학하게 된 이유, 그리고 그 상명대를 진학하게 된 이유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박선정: 사실 고등학교 3학년 정시 때 상명대학교 연극과에 지원을 했었어요. 근데 안타깝게도 떨어졌어요. 상명과의 첫 인연은 불합격이었네요. 그렇게 삼수 끝에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고, 또 대학로에서 연극하면서 학업을 이어갔었는데요. 대학로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혜화역 1번 출구에 가보면 상명대 예술디자인센터가 있어요. 대학로 연극의 중심지에 딱 위치해 있으니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더라고요. 그렇게 서른살이 되니까, 연기에 대해 조금 더 공부를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제가 대학 생활을 조금 늦게 시작한 것도 있고, 극단 생활을 10년 가까이 해오다 보니 좀 더 다양한 연극, 내가 해보고 싶은 연극에 대한 갈망이 생겼어요. 지금까지는 누군가가 만든 연극의 배우로 활동했다면, 이제는 내가 만든 연극을 직접 해보고 싶어져서 상명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에 공연예술경영전공으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합격을 했고, 그러면서 새로운 목표를 세우게 되었어요. 관심있으신 분들은 알겠지만, 극단이나 무용단 같은 예술가 집단에 본인의 이름을 건 것들이 있잖아요? 비록 제가 무명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내 이름을 건 극단 하나는 만들어보고 싶다 생각이 들어서 ’극단 박선정‘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 극단에서 졸업 공연과 함께 저를 메인으로 한 모노 드라마도 한 편 제작했었습니다. 그렇게 극단 활동도 하고 또 학업을 이어가다가 박광수 작가님의 만화 ’광수생각‘ 10주년 공연을 제작하게 될 기회가 왔어요. 예전 삼수생 시절에 광수생각 스텝을 했던 적이 있는데 정말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라 느꼈거든요. 그런데 또 좋은 인연이 닿아 제작과 출연까지 하게 된 기억이 있습니다.
석사 시절은 그렇게 보내며 공연예술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를 하다, 2020년 코로나가 터졌죠. 무관객 공연도 두 번이나 있었고, 소상공인분들이나 여러 직업군이 모두 힘들었지만 문화예술계 역시 정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 나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지?‘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난 이 길만 보고 살았는데, 약간 벼랑 끝으로 내몰린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요?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코로나 시기에 OTT 이용률이 정말 많이 올랐단 걸 알았어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졌고, 이제는 이 부분을 더 공부할 필요가 있겠다 느꼈습니다. 마침 학교에 글로벌문화콘텐츠전공이 있어 대학원 과정을 알아봤고, 결과적으로 박사과정에 진학해서 지금은 수료상태로 졸업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Q: 어떻게 본다면 열정을 통해 연극을 하는 것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것으로 꿈이 발전하였고, 또 그 과정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결단력과 추진력이 돋보이는 것이 인상적이네요. 이제 박사과정을 수료하셨고, 그동안 상명대와의 스토리도 굉장히 많으셨던 것 같은데 혹시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박선정: 시작에 앞서서 조금 무거운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저는 암 경험자입니다. 제가 연극계에서 주로 활동하기도 했고, 또 유명하진 않다 보니 생활이 그렇게 녹록치 않았어요. 지하 연습실과 극장에서 차비도 못벌던 시기가 있었죠. 그럼에도 그 어려운 시절을 잘 버텨냈고, 술이나 담배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또 가족력도 없었기에 제 건강에 대해서는 큰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제 인생에서 암은 아예 상상도 하지 않았던 병이었어요. 아까 말씀드렸듯 저는 코로나 이후 박사과정을 하면서, 대면 수업을 거의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트센터 조교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 상황이 점차 나아지고 대면 수업이 풀릴 때 즈음 약간 몸이 안좋아서 병원을 갔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레 유방암 3기 진단을 받게 되었어요. 마지막 한 학기를 남겨두고 있었는데, 대면 수업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결국 치료를 위해 줌으로 비대면 수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같이 수업을 듣는 분들을 거의 직접 뵈지 못했고, 그랬음에도 다들 저를 걱정해주시고 또 응원해주셨어요. 항암 치료로 인해 머리 없이 모자만 쓰고 수업을 듣는 제 모습을 다들 안타까워 해주시고 많은 격려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졸업 시험만큼은 꼭 학교에 와서 보고 싶었어요. 제가 항암 6, 7차 즈음에 졸업 시험이 있었는데, 항암 치료를 받으면 밥도 제대로 못먹고 기운이 하나도 없어져요. 그럼에도 시험을 잘 마치고 싶단 마음으로 몸 상태를 끌어올려 직접 차를 몰고 학교로 와 시험을 봤던 기억이 나네요. 해냈다는 성취감도 들었고요.
그리고 인상 깊었던 일을 하나 더 꼽자면, 앞서 말했듯 어려운 상황에서도 많은 응원과 에너지를 받아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게 되었어요. 그리고 몸 상태도 조금씩 호전되면서 제가 받은 것들을 학생들과 나누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지난 학기, 너무 좋은 기회가 생겨 한일문화콘텐즈전공의 캡스톤디자인 수업에서 특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같이 미디어 실습을 하며 학생들과 교감을 했는데 너무 행복한 거에요. 다시 활기찬 삶을 사는 것 같아 오히려 제가 더 많이 얻어갔던 그런 수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어 학생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어요.
Q: 사실은 되게 어려운 시간을 보내셨다는 생각이 드네요. 보통은 좌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정이라든가 또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에 끝까지 해냈다는게 참 대단한 일인 것 같습니다. 거기다 한일문화콘텐츠 학생들을 만나 특강까지 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아갈 수 있다는 게 어떻게 보면 인간 승리라고 할까요? 그런 생각이 드네요.
박선정: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암은 준비하지 못한 만남이었어요. 돌이켜 보면 암에 대해 많이 무지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암은 술, 담배와 큰 연관이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가족력이나 나이듦으로 생기는게 대부분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30대 중반의 나이에 암에 걸리고 나니까 그게 전부가 아니구나 느꼈어요. 통계학적으로 3명 중 한 명이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암을 경험한다라고 하는데, 그게 저였던거죠. 암을 제가 경험할 거라고 상상을 못했기 때문에 정말 아무것도 몰랐죠. 항암이 뭔지도 몰랐고, 그런게 막상 내 일이 되니까 충격이 컸죠. 저한테 3기라고 하는데 초기도 지났다고 하는데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되지? 나 죽는건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부모님도 암 소식 듣고 막 쓰러지시고. 소위 말해 대참사가 벌어진 거죠.
하지만 오히려 암에 대해 몰랐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항암을 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생각하면서 그 시간을 견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정말 어지럽고, 울렁거림이 지속되는 등 치료를 받았는데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항암 8번 다 끝나고 수술하고 방사선 치료하면 나 정말 살 수 있어‘ 란 생각으로 열심히 버텨냈고, 지금은 3년 반 정도 되니 암 투병 전의 체력만큼은 아니더라도 일상생활하는데 큰 무리가 없습니다. 우스갯소리지만 누군가 “이제 40대라서 그런거야. 암 후유증이 아니라.” 라고 말해줬는데 그렇게 생각해 보니 또 맞는 이야기라서 조금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죠.
Q: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다르게 보면 지금 시기가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이라 느껴지네요. 그러면서 새로운 기회나, 또 이전엔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 소위 제2의 인생을 맞이하게 되셨단 소식도 들었는데 혹시 들어볼 수 있을까요?
박선정: 아무래도 아직 결혼도 안했던지라 평범한 일상에 큰 이벤트로 다가온 게 바로 암이었거든요. 암 투병 전과 후로 제 삶이 나뉘는 것 같은데, 생각이나 여러 가지 것들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 생각해요. 전화위복의 기회라고 할까요? 제가 겪은 여성암 (유방암, 자궁암, 난소암 등)의 경우 항암치료를 받게 되면 탈모를 피할 수가 없어요. 저도 첫 항암치료 후 2주가 지나자마자 머리 감을 때 머리카락이 뭉치로 빠지더라고요. 정말 많이 놀랐죠. 그래서 삭발을 하게 되었죠. 여성분들은 아시겠지만 머리라는게 정말 여성으로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잖아요? 그 머리카락이 전부 빠지게 되면 그 우울감이라는게 정말 크게 온다고 해요. 저와 같이 항암을 받았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모습을 남편은 물론 자녀들에게도 보여준 적 없고 보여주기 싫다 할 정도로 심적으로 힘들어하시더라고요. 저도 처음엔 그랬고요.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JTBC ’서른, 아홉‘이라는 드라마에서 ’캐디‘ 배역이 들어왔습니다. 보통 골프장 캐디들이 모자를 쓰는 만큼 당시 제 머리를 감출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대본을 받아서 읽어보는데, 드라마 주인공의 상황이 저와 너무 똑같더라고요. 암에 걸린 여배우라는 설정을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아무튼 모자를 쓰고 촬영장에 가서 촬영을 했었던 기억이 나요. 그 때 ’내가 아프더라도 기회는 계속 오는구나.‘ 란 생각이 들었죠. 앞서 말씀드렸듯이 여자가 삭발을 한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제가 유방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평생 삭발할 일도 없었겠죠. 그런데 막상 삭발한 제 모습을 보니까 ’어? 생각보다 괜찮은데?‘ 꽤 마음에 든거에요. 옆에 부모님은 눈물을 흘리시는데 오히려 저는 괜찮아했죠. 그래서 치료를 받고 난 뒤 체력이 어느 정도 돌아오면 스님(비구니) 역할에도 도전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진짜 스님 배역이 들어온거죠. SBS ’꽃선비 열애사‘ 라는 드라마였는데요. 이건 해야겠다 싶더라고요.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그대로 이루어진게 정말 신기했으니까요. 이런 경험들 덕분에 병을 이겨내는 힘을 많이 얻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일 기억에 남는 경험은 필립스 광고였습니다. 필립스는 많은 분들이 아실만한 글로벌 기업인데요, 이 곳에서 암 환자들을 위한 캠페인 광고를 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광고에 출연을 하게 된거에요. 제가 투병하면서 여러 드라마에 출연하고, 또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며 암 투병 중에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아마 어필이 된게 아닐까 생각해요. 어쨌든 그렇게 촬영을 하고, 추후에 옥외나 OTT 등에 광고 영상이 송출된다 연락을 받고 ’아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어요. 그러다 얼마 뒤에 관계자에게 전화가 왔어요. 필립스 광고가 타임스퀘어에 걸린다고요. 그래서 “영등포 타임스퀘어요?”라고 물어봤어요. 집에서 갈만한 거리기도 하고, 그리고 꽤 규모가 있으니까요. 근데 “아뇨 뉴욕이에요.” 라더라고요. 그 말을 듣자마자 전화기를 떨어뜨릴 정도로 엄청 놀랐어요. ’아 이건 내가 직접 봐야겠다.‘ 하고 어머니와 같이 직접 뉴옥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죠. 물론 미국까지 가는게 쉬운 여정은 아니었어요. 항암 부작용 때문에 체력이 긴 비행을 버틸지 걱정도 되었고, 잠을 잘 못잤기 때문에 정신과에 가서 혹시 모르니 수면제 처방까지 받고 비행기를 탔어요. 그렇게 뉴욕에 도착해서 광고가 나오고, 그걸 제 눈으로 본 순간 눈물이 나더라고요. ’내가 여기까지 오다니. 아, 암 한 번 요란하게 걸렸다.‘ 짧지만 진짜 유명한 사람들, BTS 같은 사람들이 올라오는 곳에 내 광고가 올라온 것이 가슴이 벅찼습니다.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암을 통해서 시련을 이겨낼 힘,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얻은 것 같아 하루하루 감사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Q: 역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에너지가 지속되면서 동문님께 좋은 일들이 온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실 여러분에게도 좋은 에너지가 갈 것 같네요. 동문님의 다음 챕터가 궁금해집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 혹은 목표가 있으실까요?
박선정: 사실 오랜 기간 무명 배우로 살아오면서 자존감도 많이 낮아졌고,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어요, 우리가 이름대면 알만한 배우들과 달리, 저와 같이 극단에서 연기를 하면 관객도 많이 오지 않을 때가 있었죠. 그런 것들을 경험하면서 슬픈 시간을 보낸 적도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암이라는 큰 시련을 겪으며 많이 달라졌어요. 그동안 힘들었던 시간도 많았지만, 그 대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한다는 자부심과 행복함 또한 있었단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죽음일 뿐이라 생각했던 암을 이겨내면서 살아 숨 쉰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역시 많이 없어졌고요. ’이대로 죽기엔 너무 아깝다.‘ 이게 딱 제 이야기인 것 같아요. 내가 배우로서 이름을 날리진 못하더라도, 많은 분들에게 희망과 용기, 그리고 미소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내가 이렇게 멈춰 있으면 안되는 거니까요. 예전엔 ’말하는 대로‘라는 말을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투병을 하면서 ’어디가 아픈가?‘ 생각을 하면 그 부위가 아파오더라고요. 반대로 ’이번 주도 치료 잘 받았으니 아픈 곳 없을거야.‘라고 생각하면 진짜 아픈 기운도 없어지는 경험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마음 먹은 대로라는게 제 삶의 철학으로 자리잡았어요. 그래서 이제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그걸 관객분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암 투병과 석박사 생활, 이 두 가지를 거치며 새로 세운 목표도 있습니다. 흔히 배우는 ’쓰여지는 직업‘이라고 하죠. 작품 공고가 올라오면 지원해보고, 또 다른 공고가 있나 찾아보고,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죠. ’내 이야기를 독립 영화로 만들어 보고 싶다.‘ 석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콘텐츠 제작 전반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었고, 제 이름을 딴 극단을 제작한 만큼 이번엔 제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으로 남겨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20대 무명 배우의 삶, 30대 학구열을 불태웠던 삶, 그리고 40대 이후 암을 이겨낸 뒤의 삶을 그려내 보고 싶습니다. 단순히 이야기 나열이 아닌, 고난을 극복하며 얻은 행복과 꿈을 여러분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Q: 동문님의 이야기와 희망이 담긴 작품이 언젠가 우리 사회의 큰 메시지를 던질 수 있길 바랍니다. 오늘 정말 좋은 이야기들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고 계실 독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자유롭게 부탁드립니다.
박선정: 항상 꿈을 가지고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제가 누구나 아는 유명 배우도 아니고, 객관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냐 그런다면 솔직히 바로 답하기 쉽지 않을 거에요. 그렇지만 실패한 삶이냐 묻는다면 절대 아니라 말할 수 있어요.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일을 하면서 내 스스로에게 큰 자부심을 가졌어요. 꿈이 있었기에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가졌고, 그 꿈을 가지고 있기에 다음 챕터를 만들어 나갈 이유가 생겼어요. 저는 무명 배우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꿈을 향해 달려가는 배우입니다. 상명인 여러분들 모두 꿈을 향해 달려가시고, 또 꿈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잠깐이었지만 저와 만났던 한일문화콘텐츠학과 학우 여러분들도 보고 싶네요. 언젠가 다시 만날 날까지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아만자박배우‘ 박선정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생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 편의 연극이다. 우리는 이 연극에서 무슨 역할인걸까. 캐릭터성 없는 무언가로 남기에 삶은 너무나 길다. 암환자라는 무거운 말 대신 ’아만자박배우‘로 본인을 설명한 박선정 동문의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녀의 직업은 배우다. 그녀의 꿈은 배우다. 그녀의 미래 역시 배우다. 힘든 시간을 이겨낸 그녀의 무대엔 조명이 비추고 있다. 커튼 콜의 시간이다. 길었던 공연을 마치고 다음 작품으로 다가올 이를 위해 무한한 찬사를 보낸다.
기획: 대외협력처 커뮤니케이션팀